조형 예술 장르가 생존하는 방법

조새미 / 미술 비평가

  • 2022년 바이파운드리에서 열린 개인전 <숲 온도 벙커>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있습니다. (작품보기)
  • <KOREANA>(2023년 겨울호, 한국국제교류재단 발행)에 수록, pp.14~15. (웹진보기)

시각 예술에서 기술은 언제나 중요한 이슈 중 하나이다. 예술의 형식과 내용을 변화시키고, 더 나아가 그 정의까지 바꾸기 때문이다. 디지털 생태계가 공고해진 지금, 아날로그 제작 방식에 의존하던 회화, 조각, 공예 같은 예술 장르들도 이제는 기존 문법에서 벗어나 디지털 기술을 수용하며 변신 중이다.

조형 예술 분야에서 디지털 기술을 접목하기 시작한 시기는 애플사가 매킨토시 컴퓨터를 널리 보급하던 1990년대이다. 2000년대에는 CNC 기술과 3D 프린터가 수용되었고, 2020년 이후에는 이미지 인공지능(AI image generator) 상용화로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했다.

디지털은 세상을 정보화하고 탈(脫)사물화한다. 그래서 사물화를 통해 물질성을 부여하는 데 집중하는 조형 예술 작품은 일견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고전적인 예술 장르들도 기술을 적극적으로 비평하고 재해석함으로써 해법을 모색한다. 특히 데이터에 의존하는 디지털 기술은 작업의 효율성을 높여 주고 노동 강도를 줄여 주기 때문에 동시대 작가들의 기술 수용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1980~90년대에 출생한 젊은 작가들 중에는 디지털 기술의 한계를 실험하며 독특한 작품 세계를 선보이는 이들이 상당수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기술 수용으로 인해 장르 간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전통적 미술 장르의 존립에 위협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질문하며 예술의 존재 조건을 더 풍요롭게 만든다. 회화는 조각이 되고, 조각은 데이터가 되며, 공예는 회화가 된다. 재료와 기법이 중요했던 전통적 미술의 규범에서 벗어나 데이터와 사물을,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자유롭게 오가는 작업들은 이 시대 전통 장르들의 현주소를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