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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 Collective 씨알콜렉티브는 2019년 CR 기획전 《패브릭하우스 fabric house》를 오는 10월 4일부터 11월 9일까지 개최한다.
《패브릭하우스 fabric house》는 집 구조 안에서 기능하는 친여성주의적이고 장식적이며 표현적인 섬유공예 및 설치작업을 통해 가족공동체문화와 함께 젠더감수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장르간 경계를 허물며 활발한 활동을 해오고 있는 김태연, 신승혜, 오세린, 오승아, 오화진, 이순종, 이상 6명의 작가는 집 내부구조를 통해 사회 구조 속에서의 가족 개념과 기능에 대해 사유하고, 공예공동체로서 가구, 커튼, 조명, 커버, 액자 등을 새로이 제작,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가족애 및 전인류애로 드러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여성성을 탐구한다. 작가들만의 사적인 경험을 기반으로, 여성취향과 타자화된 취향의 문제, 사회구성원들의 계층·계급 간 취향에 대해 고민하고, 소외된 타자를 배려하는 성평등의 실천적 방법과 함께 공동체문화에 대한 동시대적 의미를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패브릭하우스 fabric house》는 ‘the fabric of house’, ‘집의 구조’에 대한 의미와 함께 천과 관련된 섬유(fiber), 직조(fabric) 또는 여성(female)에 의한 집의 의미를 포함하면서, 러스킨(John Ruskin)-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라파엘전파(Pre-Raphaelites)를 연계하는 정신적공동체이자 콜렉티브 활동의 장이었던 레드하우스(Red House)를 오마주(homage)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친자연주의적 공예담론 및 수공예적 제조에 대한 존중과 함께 여성공예커뮤니티라는 소집단 내에서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생산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집산주의 평등사회를 꿈꾸었던 모리스 예술공동체의 의미를 사유해보고자 기획되었다. 물론 이들의 교류가 다소 남성 중심적이고 반역사주의적 태도와 함께 다분히 이상적인 평등을 지향했다는 점 등 모순을 드러냈던 것에 대한 반성을 포함한다. 남성적 집-예술이 아닌 성평등을 전제로 젠더감수성에 의한 집-예술로, 강인하면서도 유연하고, 확고하면서도 가변적이며, 장식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이 역설적 측면들을 사유한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공예공동체의 실천적 구조를 통해 성평등, 만물평등, 평등사회를 사유해보는 전시다.
또한 이번 전시《패브릭하우스 fabric house》는 이러한 기능성과 아름다움, 표현의 확장을 넘어 동시대적 담론, 그 유의미함을 찾기 위한 시도이다. 공예는 그 동안 다양한 매체와 테크닉을 발전시키는데 집중함과 동시에 디자인과 순수미술을 넘나드는 등 의미 있는 시도를 해왔다. 그럼에도 공예의 위치는 타자를 통해 정체성을 확인해야 하는, 그리하여 스스로를 확장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능성을 전제로 노동집약적이고, 매체지향적이며, 표현적인 것으로만 제한되어 왔다. 이 지점에 대해 문제 제기하면서, 공예적인 실천과정에서 드러나는 관계와 경계, 그리고 공동체적 가치를 드러내는 것이 이번 전시의 목적이다. 즉 공예(工藝)에서 공예(公藝)로 공공의 유의미함을 찾고, 사회적 가치를 드러냄으로써 소통의 장을 넓힘과 동시에 동시대 언어로 공유하고자 한다.
《패브릭하우스 fabric house》는 활발한 예술적 실천언어를 가진 6명의 작가들과의 협업전시로서, 사전 워크샵을 통해 이번 전시의 의미를 공유하였다. 공공선과 동시에 평등을 강조하는 윌리엄 모리스의 공예미술공동체에 대한 동시대적 문제제기와 함께, 자연의 겸허함과 그 서정성을 드러낸 라파엘전파의 작업을 오마주하며 에코페미니즘(eco-feminism)의 계보를 세우고자 한다. 6명의 작가들은 집이 가진 보호, 안정과 휴식, 배려 외에도 소통, 평등, 사회적 의미를 드러내는 기능을 담당하며 내부의 기능하는 것들을 젠더감수성을 가지고 제작하고 전시한다. 작가들 모두 작업의 근간을 가족간의 관계에서 찾고 있으며, 여전히 가족과의 유대감은 실천의 원천이다. 전통적으로 한국사회에서의 여성은 처음에는 가족을 형성하는 일에 힘쓰고, 이후에는 자식을 낳고 양육하는데 전념하며, 후에는 가족과 함께 노부모를 돌보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렇게 여성은 전 생애를 통해 가족을 위해서는 무조건적인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다. 여성작가들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이들의 작업은 이러한 구조 속에 밀접하게 자리하고 있다.
김태연 작가는 일상에서 쉽게 쓰고 버려지는 비닐봉지를 모아 소중한 물건으로 전환시켜왔다. 이번 신작, <미물(微物)을 위한 미물(美物): 하찮은 것을 위한 하찮은 것으로 만든 아름다운 물건>은 비닐로 실을 만들어 거미줄-거미집-샹들리에 형식을 차용해 제작된다. 이것은 천장을 덮은 더럽고, 징그럽고, 그래서 그로테스크하여, 심지어 무서운 거미줄을 상상하게 한다. 가사일에서 청결을 방치한 여성은 게으르고 무지하며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 자로 전락한다. 자연을 정복하고자 했던 인간이 문명화를 통해 자연을 훼손하고, 다시 보복을 당하는 악순환을 경험하고 있음을, 결국엔 공존 상생을 고민하는 작가의 의도가 작동한다. 이렇게 벌레를 지극히 싫어하는 작가에게 微物을 美物로 변용시키는 작업은 인간에 대한, 아니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겸허함과 함께 경고의 제스처를 포함한다. 그리고 한 땀 한 땀 검은 비닐-실로 만든 미물은 유의미한 미물로, 여성이 담당하고 있는 가사노동에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위로를 주며, 심지어 인류애와 함께 주변환경을 돌아보게 할지 모른다.
신승혜 작가는 평등과 본질의 의미에 천착하며 페인팅과 바느질 작업을 통해 구성된 덩어리들을 설치하여 공간감과 회화성을 드러낸다. 작가에게 집의 벽 구조는 외부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고 지켜주는 중요한 역할을 함과 동시에 한계이고 외관에 불과하기도 하다. 이번 신작 에서는 이 구조를 우리의 몸으로, 회화와 지지대의 구조적 문제로의 전환을 시도한다. 작가는 외모와 몸매에 자신의 욕망과 편견을 투사하고 있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또한 벽을 지지 삼아, 평면으로의 환원이라는 죽음의 늪에서 외과의사처럼 자르고, 잇고, 틀고, 배치하는 등, 미술사에서 저평가되었던 여성적이고, 노동집약적이며 반복적 행위를 통해 삶과 예술을 이야기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투병으로 고생했던 어머니와의 사별 후 인간장기라는 형태에 집착했던 그 마음으로 모두에게 동일하게, 평등하게, 생명을 주는 장기형태의 상징성을 가지고 그리며 꿰매는 작업에 몰두한다.
오세린 작가는 치매에 걸린 외할아버지를 편안하게 보살피기 위해 창의적인 거짓 상황을 만들어내는 가족의 끈끈한 유대와 사랑, 특히 작가의 어머니의 희생과 지극한 효심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하는 간절함으로 이번 작업을 시작한다. 그리고 한국근대사를 관통하며 살아오신 가장의 망상을 통해 사회적 욕망을 살펴본다. 노약자가 되신 할아버지의 선망 속 집은 부동산-땅이고 가장 욕망하는 집착의 대상이다. 작가는 지금은 폐허가 된 옛집의 텃밭에서 가져온 모래와 흙으로 틀과 유약을 만들어 정성스럽게 액자를 구워낸다. 작가는 집안 여기저기 버려진 집기들과 무성하게 자란 잡초들을 담담하게 기록한 영상작업, <담바구>와 함께 직접 구운 액자작업, <흙을 돌보는 시간>을 설치하여 한 가장이 치매를 겪으며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드는 돌봄의 대상이 되기까지의 현장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장신구산업의 제조과정과 그 뒷모습을 날 선 다큐멘터리형식으로 보여주었던 작가의 이전 작업과는 조금은 다르게, 감정적으로 매몰되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거리 두기와 세심함의 긴장을 적절히 이용한다.
오화진은 이번 전시에서 가구, 목발, 페인팅을 결합한 시리즈를 선보인다. 평소 무시무시한 작업 양과 규모를 보여주는 작가에게 수작업이라는 과정은 자신과의 투쟁이고 고통과 두려움, 그리고 놀라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독특한 정서와 판타지를 발견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또한 자신으로부터 타인을, 그리고 사회를 해체 · 분리하고, 그 간극 속에서 안식처를 만들어 온전히 위로 받는 공간일지 모른다. 무의식의 반영이건 욕망의 투영이건, 꿰매고, 자르고, 덧붙이고 하는 끈질긴 노동집약적 작업노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인간의 몸을 분해하고 새로운 형상으로 재조합 한다. 작가는 개인의 욕망과 함께 사람들에게서 발견한 욕망을 시각화하여 대치시킴으로써 긴장감을 이끌어내는데, 그녀에게 여성의 몸은 억압에 의한 뒤틀림과 생산이라는 자연스러운 여성성의 대립이 공존하는 장이다. 다리가 불편한 어머니를 위해 목발과 의자작업을 시작한 작가는 보조기구에 장식성으로 패셔너블한 기능을 부여함으로써 단순한 보조를 넘어 가치를 선사한다. 가구에서부터 페인팅에 이르기까지 그녀가 만들어내는 이미지들은 모계사회의 강한 여성의 그것, 지나치게 적나라하고, 그로테스크하고, 직설적인 그녀만의 언어는 젠더감수성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도 모방하기 어려운 독보적인 것이다.
오승아 작가는 다양한 섬유 소재에 염색, 실크 스크린, 컴퓨터프린트 등의 다양한 기법을 사용하여 작가 만의 동시대적 직물을 만들어낸다. 각 과정에서 발생하는 우연과 필연의 만남, 그 긴장감을 십분 활용하면서, 섬유 위에 패턴화되어 프린트 된 이미지는 모든 기능을 반복, 복제, 확장, 확대 가능하게 한다. 이번 신작 <붉은 창>은 붉은색조의 직물프린트로서 규모 있는 입체적 설치를 통해 창문 안팎에 펼쳐져, 언어로 전환된 감각경험으로서의 이미지 개념을 실험한다. 씨알콜렉티브 현관 중정(中庭)에 있는 창 구조를 따라 위로부터 아래로 길게 드리운 붉은 드레이퍼리(drapery) 작업은 2층 전시장 내부로 이어진다. 이는 창문을 따라 안팎을 가로지며 흐르는 혈액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섬유가 가진 독특하고 유동적이며 자유로운 패턴으로 자연의 이미지를 표현하면서 동시에 여성성뿐만 아니라 타자화된 여성의 취향에 대해 사유하게 하는 작업이다. 수작업과 컴퓨터프린트의 활용, 수공예와 복제생산이 융합된 공(公)예로의 확장성을 실험하고 있다.
이순종 작가는 혜원(蕙園) 신윤복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미인의 이미지, 또한 향유를 부음으로써 예수님을 영접했던 막달라 마리아의 이미지를 통해 ‘성(聖)과 속(俗)’이 교차하는 에로티시즘을 실험함과 동시에 이러한 사회문화적 배경 속에서 여성의 위치를 소환시킨다. 작가는 세속적이고 도발적이면서도 동시에 숭고하고 절묘한 아름다움을 오랫동안 끊임없이 추적해왔다. 그는 백척간두(百尺竿頭)에서 한 발짝도 옮기지도 못하는 매우 위태롭고 어려운 지점이 예술이라고 말한다. 항상 끊임없는 호기심으로 한곳에 머무르지 않으며 다양하게 탐구하고 연구한다는 점에서 그는 우리나라 여성주의의 대표작가라 칭할만하다. 작가가 세필로 긁듯이 선을 그리는 것이나 침으로 찔러 작업하는 것 모두 유사한 것으로 특정 공감각에 민감한 자신만의 언어를 구축하여 표현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사전 워크샵을 통해서 공유한 작가의 매체나 관념과 감각에 대한 뛰어난 이해뿐만 아니라 그의 경험과 예술관은 동료작가들에게 많은 공감과 영감을 주었다.
인류에게 문화예술적 활동으로서 공예적인 것이 미술보다 앞섰다 하더라도, 공예는 순수미술로부터 구별되는 지점에서 탄생되었고, 기계발달과 산업의 분업화에 반발해 또 다른 손과 창의력, 그리고 정신을 강조하는 공예의 길을 제시하였으며, 디자인과도 구별된 것으로 진화해왔다. 이렇게 공예는 미술과 디자인과의 분리와 차이에 의해 고유성을 지켜왔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삶과 환경이 다변화되면서 인간활동과 문화는 ‘공예적인 것’으로 공유하며 끊임없이 확장해왔다. 이번 전시《패브릭하우스 fabric house》가 확장된 환경에서의 공예적인 것을 통해 공예에 대한 동시대적 유의미성이 논의되는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 ■오세원 (씨알콜렉티브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