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가 진짜인 시대에서의 예술이란, 액세서리 기행
심소미 / 독립큐레이터
- 2016년 가창창작스튜디오 개인전 <액세서리 기행>(스튜디오 가창, 2016)의 평론입니다. (작품보기) (작품보기)
- 언급된 ‘액세서리 기행: 서울, 이우 그리고 동반’(2016)은 ‘새들은 날기 위해 머리를 없앤다'(2016-2018)의 가편집본입니다.
- 가창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 결과보고집(2016)에 수록.
심소미 / 독립큐레이터
가짜가 판을 치는 세상이다. 진짜의 배후에서 작동하는 가짜, 진짜를 모방하고 위장한 가짜의 존재는 정치, 경제, 사회, 그리고 예술의 영역까지도 파급력을 미치고 있다. 가짜가 진짜를 행세하는 시대, 이는 오늘날 고도자본주의와 소비중심사회가 이끌어낸 사회적 현상이다. 우리 사회는 짝퉁, 이미테이션, 모방, 조작, 위조, 위장, 대리 등 진짜인 척 하는 가짜들의 존재로 몸살을 겪는다. 진짜보다 가짜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터인데, 왜 가짜의 존재는 이리도 사회를 잠식해나가는 것일까? 그 배후에는 이를 요구하는 사람들, 바로 수요자, 소비자로서의 우리의 욕망이 바탕이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소비 행태는 상품의 가치에 대한 열망과 부러움을 대중에게 불러 일으켜 왔다. 이러한 욕망은 결국 짝퉁 산업의 발전을 기형적으로 비대하게 성장시켰다. 짝퉁, 이미테이션, 가짜 상품은 우리 일상에서 아주 흔하게 퍼져 있는 대중적 아이템이다. 명품 브랜드를 흉내 낸 가방, 옷, 신발 외 인간의 과시욕은 가짜 액세서리에서 더 극적으로 드러난다. 액세서리는 개중에서도 가장 값싼 제품이자 동시에 가장 광범위한 양으로 복제, 유통, 소비되고 있는 아이템이다. 오세린의 작업은 싸구려 액세서리를 통해 오늘날 사회 구조와 사람들의 욕망 사이를 침투해 들어간다.
가짜 액세서리에 대한 의구심은 작가가 대학 시절 금속공예를 공부할 때 자기 성찰적 고민에서부터 시작된다. 동시대의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액세서리 디자인의 경우 다수가 명품 디자인의 복제품이다. 사람들은 무비판적으로 선호되는 디자인을 값싼 액세서리를 통해 충족하고, 이 욕구가 커질수록 저가 액세서리는 미에 대한 사회적 기호를 통일된 가짜 기호로 전파시켜 나간다. “가짜가 얼마나 진짜와 같이 행세할 수 있는가?” 작가는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던지며 가짜와 진짜의 위치 전복을 감행한다. 2009년부터 제작해온 ‘모방과 속임수’는 싸구려 복제품들에 예술의 가치와 권위를 부여하는 작업이다. 시중에 유통된 가짜 액세서리를 수집하여 실리콘 몰드로 다수 복제한 다음, 이를 다시 재조합 하여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형태를 제작하는 것이다. 이때까지는 다소 상투적일 수 있는 예술의 원본성과 복제물 사이의 고심이 담긴다.
그런데 이 독특한 장신구들이 유통 구조에 노출되면서 작업의 맥락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작품의 의도에 개의치 않고 유통의 과정에서 획득된 부가 가치를 새로이 덧붙여 나가게 된 것이다. 다소 기이한 형태의 반지는 착용이 쉽지 않은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기존의 주얼리 디자인과 다른 독창적 가치를 인정받으며 고급 예술의 유통망에 노출되기 시작한다. 저명 패션잡지의 커버로 등장하고, 작품이 등장한 패션사진이 국공립미술관에 전시되고, 고급 백화점의 쇼케이스에 진열되는 상황이 연이어 발생한다.
가짜 복제물이 뒤섞인 장신구는 미술관, 백화점, 패션잡지, 컬렉터, 즉 자본이 부여한 예술의 가치를 획득한다. 유통을 거듭하며 의심 없이 고급미술로 치장되어 나가는 싸구려 복제품의 여정은 자본주의 시스템에서의 성공적인 자기 신화를 상기시킨다. 이는 가짜마저도 진짜로 전환시키는 자본의 구조로부터 추동된다. 이쯤에서 작가는 원본의 신화 창조라는 예술의 환등상을 목격했을 것이다. 이에 대한 회의감으로부터 그가 찾아간 곳은 바로 싸구려 액세서리의 진짜 생산지이자 유통의 시작점이다.
작가는 올해 대구문화재단 해외레지던시 파견 프로그램으로 중국을 가며, 전 세계 액세서리의 생산지인 이우(义乌, Yiwu)에서 공장 촬영과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이를 담아낸 영상 작업 ‘액세서리 기행: 서울, 이우 그리고 동반’(2016)에서는 동대문 시장보다도 규모가 거대한 액세서리 시장과 한인 사장이 운영하는 제작 공장이 등장한다. 공장의 기계와 노동자의 손이 마치 하나의 기계마냥 쉼 없이 움직인다. 새까만 기름때가 낀 손은 기계 사이로 재료를 반복해 넣으며, 기계적인 움직임을 수백 번, 수천 번을 반복한다. 이 움직임 속에서 하나의 형태가 수천 개의 액세서리 더미로 복제된다. 동전보다 작은 액세서리들이 주물, 커팅, 조립, 땜, 각인, 도금 등 여러 공정을 거쳐 제작되어 나간다. 액세서리의 제작 과정이 화면으로 지나가는 동안, 한 남성의 거친 목소리가 영상의 시놉시스를 이끌어 나간다.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액세서리 공장의 사장인 남사장이다. 한때 남디자이너이기도 했던 남사장은 중국, 베트남에 액세서리 공장을 차려 전 세계로 수출을 하고 있는 성공적인 사업가이다. 남사장의 말에서 끊임없이 등장한 단어 자본주의는 저가가 시장을 장악한 오늘날 유통시장 시스템을 드러낸다. “저가가 시장을 장악합니다. 고가는 1%만 장악하지만, 전부를 장악할 수 있는 게 저가입니다” 가짜가 진짜를 행사하는 세상에서, 진짜보다 더 진짜인 싸구려 액세서리들은 전 세계 곳곳의 마켓으로 수십 만 개가 팔려나가 대중의 소비 기호를 충족시킨다. 다수의 소비자가 원하는 생산구조, 자본주의의 이익은 다수의 생산과 소비에 의해 작동된다. 이러한 소비성향을 비난하기는 쉽지 않다. 소유할 수 없는 고가의 가치를 보통의 사람들도 손쉽게 취할 수 있는 위로 심리가 바로 싸구려 액세서리에 담기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시장에의 약육강식의 구조는 남디자이너를 남사장으로 변모시켰다. 그의 얘기에서 욕망의 실체는 직접적으로 자본을 지시한다. 듣기 다소 민망할 정도로 사회의 시스템을 노골적으로 얘기하는 그의 목소리에서는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생존하려 몸부림치는 개인의 욕망이 담긴다. 거대한 가짜 시스템은 소비자의 욕망에 부흥하며, 진짜보다도 더 리얼하게 우리의 삶의 표면과 욕망을 장악해간다. 치열한 자본의 시스템 사이에서 작가는 ‘이제는 생산자-판매자-소비자 사이에서 예술가의 역할을 찾고 싶다’며, 가짜가 진짜인 생산 시스템, 생산이 곧 소비인 사회의 구조에 접근해 나간다. 오늘날 소비와 소유, 그리고 약육강식의 구조에 담긴 환상들, 수십 만 개로 찍혀 나오는 싸구려 액세서리의 반짝거림은 그 환각의 표면일 것이다. “오래된 좋은 것들이 아니라 새로운 나쁜 것들을 본받으라.” 이 말은 발터 벤야민이 ‘1939년 일기 중에서’ 인용한 브레이트의 문구이다. 작가가 다루는 싸구려 액세서리는 오늘날 소비, 소유, 권력에 대한 꿈의 환등상에 접근하는 산물이다. 이 ‘새로운 나쁜 것’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영상에서 마치 기계의 부품처럼 등장하는 검은 때가 짙게 배인 공장 노동자의 무수한 손들이다. 노동자의 손은 이 환등상 아래로, 자본으로부터 소외된 실체를 넌지시 드러낸다. 자본의 실체와 허상 그리고 소외 사이에서 작가가 이를 폭로하는 데서 나아가 어떻게 욕망의 허와 실 사이의 모순에 개입할지는 앞으로 좀 더 지켜볼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