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린(이하 ‘오’): 안녕하세요. 저는 동양화와 공예를 전공한 후, 지난 몇 년 간 공예를 기반으로 한 작업을 해왔습니다. 2012년 첫 번째 개인전 후, 이 정도 규모의 개인전은 두 번째인 셈입니다. 오늘이 전시 마지막 날인데요. 이전의 작업과정을 말씀드릴 겸, 전시기간 동안 받았던 질문 중, 왜 동양화에서 금속공예로 넘어왔고, 동양화가 너의 작업에 어떤 영향을 미쳤냐 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해요.
저는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서울대학교 동양화과를 다녔어요. 동양화과는 서양화과와 다소 경쟁구도를 취하고 있었죠. 단순한 예로 졸업전시가 열리는 복도의 초입이 서양화과와 동양화과의 작품으로 시작되는데, 동양화과가 디스플레이를 하고 나면 다음날 서양화과의 작품이 10센티 높게 걸려있는 식이었어요. 제가 졸업을 할 때엔, ‘먹으로 사람을 그리면 무조건 졸전을 통과할 수 있다’라는 농담이 있었어요. 교수님 중 한 분은 제게 ‘오세린의 그림은 동양화과의 정체성이 없다’라고 하셨죠. 재료가 물감이나 먹이 아니라, 동대문 시장에서 수집했던 천 조각이었거든요. 저는 컬러텔레비전을 보고 자란 세대잖아요. 먹과 일필휘지에 정신을 담아서 그림을 그린다는 게 굉장히 부담스러웠고, 저를 둘러싼 것들에서 작업을 시작하고 싶었어요. 제가 자주 보던 동대문시장의 반짝이는 천을 팔레트 물감 대신 사용한 거죠. 그리고선 동양화과 졸업 후 금속공예과에서 1년간 수업을 더 듣는데, 동양화과에서 먹 작업을 권장했듯 금속공예과에는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만드는 것을 권하더라고요. 왜냐하면 그것이 공예가 정신이니까요.
최범(이하 ‘최’): 그럼 학교를 1년 더 다닌 건가요?
오: 복수전공으로 전공이 두 개가 된 셈이죠. 금속공예과의 졸전 필수 과제가 ‘물을 따를 수 있는 기물’이었고 나머지는 자유주제였어요. 망치로 두들기든, 톱을 쓰든 전통적인 방식의 공예기법을 기본으로 만들어야 했죠. 망치질이 서투니까 욕을 하면서 꽃병을 만드는 한편, 그때 자유주제로 만들었던 게 이번 작업의 모티브가 된 <모방과 속임수>라는 작업이에요. 명동이나 대학로 같은 길거리에 가면 저가 액세서리 매장이 많잖아요. 많은 젊은이들이 천 원, 이천 원짜리 액세서리를 바구니에 쓸어 담는 모습을 관심 있게 봤어요. 사람들이 가지고 싶어 하는 귀걸이나 반지는 저렴하고 쉽게 자기 몸을 장식할 수 있는 것들인데, 나는 왜 공예가로써 한 달에 한 개밖에 만들지 못하는 어려운 작업을 해야 할까. 이런 생각에서 시작된 작업이 동양화과 시절에 작업하던 것들과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 같아요. 사람들의 관심이나 욕망을 작업에 반영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했고, 길거리에서 파는 저가, 짝퉁 액세서리를 수집하는 것에서 작업이 시작되었어요. 이게 2012년도 개인전의 <모방과 속임수> 작업이에요. 이때에는 사회에 대한 회의감, 오기와 자격지심 등이 섞여서 작업을 쭉 진행한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작가가 모은 ‘대중의 욕망이 응축되어 있는 저가 액세서리’를 피라미드의 꼭대기로 올릴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피라미드의 꼭대기라는 게 이런 화이트큐브 공간이 될 수도 있고, 백화점 같은 판매장, 고가 액세서리나 브랜드를 소개하는 잡지가 될 수도 있는 거예요. 그런 곳에 길거리 액세서리가 어떻게 하면 감쪽같이 등장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소비될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최: 길거리의 싸구려 액세서리를 고급한 위치에 올려놓으면서 문화적인 계급 차별을 없애겠다는 건가요?
오: 선동을 해서 사회국가로 가자는 혁명적인 건 아니고요.
최: 사회에는 사람도 그렇지만 물건들도 일정한 계급적 구조를 가지고 있잖아요?
오: 네, 저는 확실하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 그 구조가 마음에 안 들었던 건가요?
오: 마음에 들지 않죠. 저조차도 그 구조 안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은 확실하고요. 저는 사람들의 취향이 그 구조를 반영하는 형식으로 드러난다고 봐요. 위를 향하는 소비 같은 거죠. 어떤 상품이나 물건을 자기를 둘러싼 사물로 취할 때, 구조의 위에 있는 사람들이 취하는 물건들을 쫓아가는 거예요. 그게 꼭 반지같이 반짝이는 액세서리뿐만 아니라 의식주 전반, 삶의 태도에 있어서도 쫓는 대상이 거죠.
최: 사람이든 물건이든 엄연히 계급 구조가 존재하죠. 오세린 작가의 근본적인 문제의식은 그런 계급구조가 잘못됐고 불평등하고 비인간적이라는..?
오: 우울한 정도는 아니고요. (웃음)
최: 혁명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런 식의 질서, 계급구조가 부조리해 보였기 때문에 그걸 뒤집던지 깨부수려고 했던 거죠?
오: 사회 시스템이 워낙 고정적이고 견고하다 보니까, ‘작가가 거기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어떤 게 있을까’라는 작은 시도인 거죠. 재미있는 사례 중 하나가, ‘보그’라는 패션잡지와 관련이 있는대요. 그 잡지의 스타일리스트였던 서영희 선생님께서 제 작업을 보시곤 협찬 요청을 하신 일이 있어요. 보그에서 1년에 두 번씩 구본창 사진작가와 콜라보레이션을 하는데, 주얼리 특집을 위해 제 작품을 전부 가져올 수 있냐는 요청이었어요. 그래서 구본창 작가의 스튜디오에 갔죠. 한 켠에 명품 브랜드들이 놓여있더라고요. 몇 천만 원짜리가 반클리프 아펠 목걸이도 진열되어있고요. 서영희 선생님은 제 작업 내용을 충분히 알고 계셨어요. 제가 ‘이건 길거리에서 수집한 것들로 만들어서 샤넬 짝퉁 로고가 박혀있는데 (잡지에 나와도) 괜찮냐’고 여쭈니까, ‘예쁘면 괜찮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보그 화보 네 페이지에 작업이 나온 이후 다른 패션 잡지에서도 작업 협찬을 요청해왔고, 작품이 패션잡지에 섞이게 되었죠. 이런 상황이 재미있더라고요. 커다란 시스템 안에 제 작업이 빨려 들어가서는 제 원래 의도와 상관없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 새로운 이미지와 이야기가 나오니까요. 이렇게 첫 번째 시리즈를 2014년까지 진행을 했어요.
Vogue Korea (2012.08)
최: 오세린 작가의 문제의식의 출발은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부조리한 계급 구조에 대한 객기 어린 저항, 반칙 같은 거네요. 마음에 안 들고 배알이 꼴렸기 때문이겠죠.
오: 보그에 제 작업이 등장했던 것처럼 부유한 계층이 제 작업을 사 가도록 하는 것도 희망사항 중 하나였어요. 그들이 절대 사지 않을 길거리 액세서리가 작가의 가공을 거쳐서 그들의 서랍장에 들어가게 하는 것.
최: 소심한 복수, 미학적 복수라고 할 수 있겠네요.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죠. 오세린 작가의 문제의식은 계급투쟁적이거나 혁명적인 어마어마한 이론을 갖다 대지 않더라도, 누구나 세상을 살아 보면 인간 세상이 부조리, 불합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죠? 왜, 세상은 부조리한가? 가령 가난뱅이는 왜 저렇게 살고, 부자는 왜 저렇게 사는지, 착한 사람이 왜 빨리 죽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답을 쉽게 얻을 수 없죠. 세상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어요.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세상이 원래 그런 거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지, 맞춰 살아야지.’라며 그렇게 살아요. ‘세상은 마음에 안 들어, 그러나 어쩌라고. 마음에 안 드는 세상이지만 나 하나라도 마음 편하게 살자’ 이게 아마 대부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처세일 거예요. 대부분 순응하고 부조리한 세상에 타협하며 살죠. 그런데 가끔 몇몇 사람들이 ‘아이 쌍, 왜 이래’ 이러면서, ‘난 이런 세상에서 마음 편하게 못 살아, 무언가 잘못됐어, 한번 바꿔 봐야겠어’라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죠. 몇몇 사람들은 질서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걸 바꿀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발가락 하나 꼼지락거리는 수준일지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해봐야겠다는 착한 사람들이 있는 거죠.
착한 사람은 여러 종류가 있어요. 하나는 그냥 순진하게 착한 사람들. 가난한 사람, 폐지 줍는 할머니를 보면 가슴이 짠하고 애잔해지는 사람들이죠. 또 한편에는 이런 부분에 대해 심각한 고뇌를 하고, 이 세계를 변화시키는 혁명을 해야겠다며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도 있어요. 제가 이야기 듣기로는 오세린 작가는 순진한 착한 사람의 계열에 속하는 것 같습니다.(웃음) 나쁜 사람보다는 좋죠. 문제는 ‘이런 순진한 착한 사람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들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심지어 미술을 통해서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같은 질문 아닐까요? 그게 아니면 당신 혼자 ‘자기위안’으로 끝나는 것인가 하는 거죠. ‘난 적어도 세상의 부조리에 가슴 아파할 줄 아는 사람이야. 그리고 조금이라도 이걸 바꿀 수 있는지 노력해보겠어’ 같은 시도라면, 가능성이 있는지 따져봐야 할 것 같아요. 일단 미술사나 공예사에는 이런 문제의식으로 작업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죠. 혹시 미술사나 공예사에서 본인 작업의 모델이 있나요?
오: 당장 떠오르는 인물은 영화계 인물이네요. 벨기에의 다르덴 형제요. 사회의 단편을 마음 아프게 드러내는 경우네요. 꼬여있는 작품들을 좋아해요. 사회에 대한 부조리뿐만 아니라 공예가가 만드는 작품이 대중이 소비, 소유하는 사물과 너무 멀어지지 말아야겠다는 경계 때문에 저가나 짝퉁 액세서리까지도 제 이야기에 포함하고 싶었던 것 같고요.
최: 일단 오세린 작가는 착한 사람인 것 같아요. 그런데 개인으로서 착한 것과 그걸 작가로서 삶의 모티브와 작품의 동력으로 삼으면서 뭔가를 보여주겠다고 사회적 실천을 하고 자기 가치를 실현하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얘기에요. 후자는 실천성이 있는지 검증이 되어야 해요. 오세린 작가는 후자의 실천을 하고 있어요. 이때 우리가 정색하며 물을 수밖에 없어요. 정말 당신 작업이 당신의 생각을 잘 실현하고 있는가? 당신은 그렇게 생각한다지만, 그게 사회에 씨알이 먹히는 이야기인가? ‘난 착한 사람이고 의식 있는 한 명의 작가야’라는 자기위안을 넘어서는 수준에서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질 수 있는가? 이런 질문들이 본격적으로 나오게 되죠.
오: 무거워지는 거죠.
최: 한 번 착하게 살아보려다가 무거워지는 거죠. (웃음)
관객 A (이하 ‘A’): 오세린 작가가 막연하게 생각하던 부분을 선생님께서 날카롭게 꼬집으신 것 같아요. 오세린 작가는 자기 작업의 정체성을 주로 사회구조 속에서 찾는데, 사실 작가가 동양화과 출신인지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잖아요. 그런데 작가는 정체성을 거기에 두고선, 자기가 누구이고 작업이 무엇인지 시스템 안에서 찾으려고 해요.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어떤 건 나쁘니까, 나는 내 작업을 통해서 좀 다른 걸 보여주겠다’고 말하는데, 무엇이 좋고 나쁜 건 손바닥 뒤집듯이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단 말이에요. 그런데 작가가 생각하기에 이게 왜 나쁘고 문제인지는 작업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보여준 적이 없었다고 생각해요. 이 시스템이 정말 나쁜지, 이 구조가 작가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같은 고민이 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있거든요.
오: 저는 그런 고민을 이번 작업에 반영했다고 생각해요. 어떤 큰 시스템이 나쁘고 좋다는 가치판단보다는 다수의 사람이 그 시스템을 의심 없이 따라갈 때, 누군가는 그것을 의심해볼 여지가 있다고 생각해요.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한 방향의 패러다임만 쫓아갈 때에는 예술가 같은 예민한 사람들이 제동을 걸 필요가 있다고 느껴요. 대량생산된 사물들을 수동적으로 소비하고 내 삶을 꾸며가는 것들에 대한 전반적인 의심으로 작업을 시작했던 게 아니었나 싶어요.
맞아요. 제 태도가 처음에는 굉장히 이분법 적이었어요. 물론 지금도 나중에 돌아볼 때에는 많이 부족하겠지만요. 무언가를 나누는 걸 좋아했어요. 진짜와 가짜, 좋은 것과 나쁜 것, 오리지널과 짝퉁. 그렇게 나누었거든요. 그렇게 작업을 하는 게 쉽기도 하고, 스스로에게도 설득이 빠르니까요. 그런데 지하 2층에 있는 <새들은 날기 위해 머리를 없앤다>의 남 사장과의 인터뷰라든가 이번에 베트남에서 있었던 일들을 생각해보면 제가 오히려 그들에게 흡수되더라고요. 현장에서는 제 태도를 고수하는 게 힘들었어요. 그러면서 좀 꺾인 것 같아요.
관객 B (이하 ‘B’) : 작가가 구조를 이분법으로 나누는 건, 본인이 어떤 공격을 받을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불길에 들어가는 것 같아요.
최: 저는 오세린 작가를 작년 하반기에 처음 만났는데, 그때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선 놀란 게 두 가지 있어요. 하나는 오세린 작가가 생각하는 방법론이 전혀 새롭지 않다는 것에서, 또 하나는 그 새롭지 않은 것을 실제로 뻔뻔하고 참신하게 하고 있다는 것에서 놀랐죠.(웃음) 사실 아는 이야기 아닌가요? 오세린 작가의 문제의식이나 이런 실천, 즉 원본과 복제의 관계, 대중문화나 하위 장르의 문제의식으로 작업하는 작가가 현대미술에는 셀 수 없이 많죠. 저에게는 하나도 신선하지 않은 문제의식이에요. 어떻게 하면 이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을 구할 것인지는 세종 때부터 고민되던 것이잖아요.(웃음) 전혀 새로운 게 아니에요. 우리가 현대미술을 조금만 알면 다 아는 이야기를 어떻게 이렇게 자기가 처음 하는 것처럼 말할 수 있을까. (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선하게 했다는 것이죠. 다른 사람들은 ‘그거 쌍팔년도 이야기 아니야?’라며 다 안다고 생각하고 안 해요. 촌스럽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 그래서 아무도, 아무 말도 없지 않나요?
B: 그래서 저는 이 초대장을 보고는 전체가 레트로스펙트 retrospect를 키워드로 기획되었구나 생각했어요.
오: 장식장을 구하는 데 전국을 다 뒤졌습니다. 비싼 건 어디에 들어가 있을까 떠올렸을 때 떠오르는 전형적인 이미지가 있더라고요. 막상 찾기 어려웠지만요.
A: 이미 모더니즘이 지나갔음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추상 페인팅을 하는 작가들이 있잖아요. 오세린 작가도 다 알고 다 지나간 이야기를 계속하는 건 흥미와 재미가 있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너무 뻔하니까 의미 없어’가 아니라 스스로 작업 과정에서 쾌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Exhibition view (How to arrange glitter and gold, Seum Art Space, 2018)
오: 소설가나 영화감독처럼 많은 예술가들이 다루었던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점점 더 팍팍해지고 있잖아요. 우리는 점점 비슷한 옷을 입고, 같은 생각을 하면서 어느 한곳을 향해서 돌진해가고 있는데, 그렇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게 맞지 않나 싶어요.
최: 아무리 오래된 낡은 문제라도 자신에게 신선하고 의미 있다면 할 수 있는 거고, 그건 자기 자유겠죠. 그러나 우리는 지금 개인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는 문화판, 미술판 속에서 이런 행위가 의미가 있는지 따지자는 거죠.
저 자신도 궁금한 부분인데 저는 일단 이렇게 판단해요. 오세린 작가는 순진한 바보이거나 교활하거나 둘 중 하나일 거다.(웃음) 문제의식이 하나도 신선하지 않으니까요. 윌리엄 모리스의 고민이 뭐였는데요. ‘왜 좋은 물건들을 가난한 사람들은 가질 수 없는가’였잖아요. 역사가 나선형적인 반복을 하듯이 계속 비슷한 상황은 존재하죠. 1960년대에 앤디 워홀이 물었던 문제를 오늘날 다른 방식으로 물을 수 있겠죠. 앤디 워홀이 한 명의 마릴린 먼로보다 열 명의 마릴린 먼로가 더 좋은 거 아니냐는 생각에서 열 개를 그렸다고 했을 때, 오늘날 어떤 작가가 ‘한 명의 문재인보다 열 명의 문재인이 더 좋은 거 아니냐’며 열 명의 문재인을 그린 사람이 있다고 쳐요. 어떤 면에서 이 사람은 앤디 워홀의 반복이죠. 그러나 1960년대 미국 사회에서의 의미와 현재 한국 사회에서의 의미가 같을 수 없죠. 중요한 건 그 차이가 의미 있는지 여부죠. 동일한 행위의 반복이 어떤 차이를 가져오는지.
사실 오세린 작가의 문제의식 자체는 19세기 윌리엄 모리스식에서 한 치도 못 벗어나죠. 문제의식으로만 보면 똑같아요. 그러나 21세기 초에 이런 행위를 뻔뻔하게(?) 할 때의 의미는 다를 수 있다는 거죠. 차이가 하나도 없는 행위라면 그건 완전히 바보짓이고, 그저 윌리엄 모리스나 앤디 워홀이 했던 작업의 반복인 거죠. 단순 반복이 아니고, 그 반복을 통해서 어떤 차이들을 만들어낸다면 굉장히 주목해야 하고 그 차이를 읽어내야 해요. 그게 유의미한 지점일 거예요. 만약 그 차이를 본인이 알고 계산해서 했다면 무지 교활한 거고, 그건 아티스트로서 살아남는 중요한 밑천, 또는 모티브나 디딤돌이 될 수 있어요. 역설적으로 그게 오세린 작가의 오리지낼리티일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본인이 이번 전시를 통해서 그런 점을 찾았는지가 중요할 것 같아요.
오세린 작가는 정확하게 말하면, 공예가를 사칭한 파인 아티스트죠. 저 자신은 파인아트와 공예의 차이를 따지는 건 중요하지 않고 관심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자기 게임의 도구로 삼는 사람이 있다면 이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죠. 물론 오세린 작가는 파인 아트와 공예를 둘 다 하는 사람이긴 해요. 그런데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공예를 도구 삼아, 공예를 빙자해서 작업하는 파인 아티스트에 가깝다고 봅니다. 그래서 오세린 작가의 작업은 메타 공예인 거죠. 공예 자체를 메타적인 관점에서 보기 때문이죠. 손으로 만든 반지는 ‘공예’지만, ‘반지가 무엇이냐’는 질문은 메타한 것이고 파인아트가 돼요. 앤디 워홀이 통조림을 그렸다고 해서 그가 통조림 업자는 아니잖아요? 통조림을 가지고 자기 생각을 표현한 거죠. 마르셀 뒤샹이 변기를 갖다 놨다고 해서 그 사람이 변기 판매업자는 아니고요. 저는 오세린 작가를 공예가로 보지 않아요. 작가가 만드는 오브제 자체를 분류하면 공예에 속하지만, 오세린 작가에게 이 반지는 앤디 워홀의 통조림통이나 마르셀 뒤샹의 변기 같은 거죠. 자신이 생각하는 사회적이거나 문화적인 그런 관념을 표현하기 위한 작업의 도구, 하나의 미디어죠. 정교하고 비싸고 고급스러운 반지, 좋은 반지를 만드는 게 목표가 아니죠. 본인이 말했듯 사회 속에서 싸구려와 고급 반지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인 위계라든지, 대중이 거기에 함몰되어 있는 문제 등을 다루고 싶은 거죠.
그렇기 때문에 오세린 작가는 파인 아티스트인 거에요. 그런데 약간 공예가 코스프레를 하니까 사람들은 ‘저 사람이 공예가인가?’ 생각하겠지만, 그건 속임수인 것 같아요. 의도적 속임수이든 자기도 몰랐던 속임수였든, 제가 볼 때에는 공예를 가지고 파인아트적인 작업을 하는 게 신선한 차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알기로 한국 공예가 중에 그런 작업을 하는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아까도 얘기했지만, 진부하고 누구나 아는 문제의식을 무지 신선하게 실천하고 있다고 생각한 거예요. 이것이 제가 지금까지 발견한 오세린 작가의 의미 있는 부분이고 그래서 높게 평가합니다. 길에 떨어진 휴지를 줍는 게 착한 일이란 건 알지만 실제로 열심히 줍는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에, 열심히 휴지 줍는 사람의 우직함에 감동하는 것처럼요. 다른 사람들은 이런 작업을 안 하죠, 실제로. 알고도 안 하는지 몰라서 안 하는지 모르겠지만,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건 뭐, 전혀 새로운 문제의식이 아니잖아?’라면서 안 할 거예요. 또는 그런 생각을 정말 해본 적이 없어서 하지 않겠죠. 오세린 작가가 상대적으로 차별화되는 지점은, 다른 공예가들이 하지 않는 작업을 하면서 공예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것이죠.
B: 정체성을 굳이 나눠야 하는 상황이 있잖아요. 스스로 내가 어느 쪽인지 생각해야 할 때도 있고, 남들도 많이 물어보고요. 저는 그걸 왜 나누어야 하는지 모르겠으나, 오세린 작가는 평소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어요.
오: 최범 선생님과 에피소드가 하나 있어요. 선생님께서 제 이름 옆 괄호 안에 뭐 하는 사람이라고 쓸지 물어보시더라고요. 제가, “’금속공예’라기엔 이번 전시 중 3분의 1이 영상이고, 3분의 1이 드로잉과 기록이고, 전시된 반지 중 절반이 공장에서 만들어졌다. ‘금속공예가’라는 일반적인 관념에서는 너무 벗어나는 것 같으니 그냥 ‘시각예술가’라고 써달라.”고 했어요. 그리고선 샤워를 하면서 ‘내가 정말 시각예술가이고 금속공예가는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전화를 드려서 “금속공예가라고 써도 될 것 같다”고 했어요. (웃음) 2018년도에 작업을 하는 금속공예가는 우리가 알고 있던 전형적인 금속공예가가 아닐 텐데, 왜 내가 먼저 금속공예가는 영상도 찍으면 안되고, 공장도 가면 안되고, 아카이빙 자료도 걸면 안 된다고 선을 그을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다들 구분을 하잖아요. 미대에서 동양화와 서양화를 구분하는 것처럼요. 서울문화재단 같은 공모사업을 지원할 때 보면, 어떤 분야에 체크를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복합 매체인지 공예인지. 옻칠이나 물레로 빚는 도자기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 ‘공예’로 지원하는 걸 보면, 제가 공예에 체크를 해도 되나 싶어요. 저 혼자 결론 내리기엔 힘든 질문인 것 같아요. 열린 해석에서 볼 때에는 무엇에도 다 해당이 되고, 좁은 의미에서는 어디에도 해당이 되지 않는 것 같아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최: 작가의 정체성은 작업으로 보여지는데, 실천적인 측면과 이론적인 측면을 구분해야 한다고 봅니다. 저같이 이론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작가가 스스로 뭐라고 생각하는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요. 이론가의 관점에서는 나름의 분류 기준이 있으니까요. 그러나 이건 이론가의 엄격한 이론적 관점이고, 작가라면 영업 전략에 따라 유리하게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이론을 완전히 무시하거나 엉뚱한 소리를 해서는 안되겠지만, 작가는 실제로 미술판을 삶터로 삼고 행동하며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허용될 수 있는 수준의 범위 내에서는 자기 영업에 유리한 이름을 쓰는 게 자유이고,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한 예로, 제가 며칠 전 어떤 모임에서 최정화 작가를 오랜만에 만날 일이 있었어요. 최정화 작가는 요즘 자기 자신을 소개할 때, ‘설치미술가’라고 하죠. 그런데 며칠 전 그 자리에서 최정화 작가의 포지션은 ‘업자’였어요. ‘전시 디자인 업자’로 회의에 참석한 거죠. 최정화 작가는 아티스트로 잘 나가는 사람이지만, 디자인 업체를 운영하는 디자이너이기도 해요. 개인 아티스트로도 많은 활동을 하지만, 한 편으로는 디자인 프로젝트를 하는 디자인 업체 사장인 거죠. 그런데 제가 최정화 씨를 처음 만났던 1980년대 후반 혹은 1990년대 초에, 그가 제게 명함을 주었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있었죠. ‘간섭자( interventor)’라고요. 그러면서 ‘저는 간섭자입니다’라고 말하는데, ‘이게 무슨 소리인가’ 했죠. 별난 사람이구나 싶었어요. ‘내가 이론을 공부한 사람인데, 이렇게 자기 마음대로 이름 붙여도 되는 거야?’라고 그 때 생각했죠. 그렇게 처음 만났던 ‘간섭자 최정화’는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서 ‘설치 미술가’로 유명해졌죠.
오: 마케팅을 하는 거네요.
최: 그렇죠. 최정화 씨의 작업이 주로 설치작업이니까 설치미술가라 하는 게 정확하지만, 보통 우리가 미술가면 그냥 ‘미술가’라고 말하지 목조각가, 금속조각가 이런 식으로 세부 장르를 펴시하지 않잖아요. 그런데 최정화는 그냥 미술가가 아니라 반드시 ‘설치 미술가’라고 하거든요. 그가 자신을 설치 미술가라고 말하기 시작하던 때를 기억해요. 언젠가 간섭자 최정화를 다시 만났는데, 그때는 자신이 ‘설치미술 하는 사람’이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러면서 “제가 설치미술가인 이유는 설치는 미술가이기 때문이죠”라고 말했어요. 설치미술가라는 말은 원래 있는 말인데, 자기 나름대로 전유를 한 거죠. 간섭자, 설치는 미술가, 설치미술가, 또 한편으로는 설치업자. 한 예를 들었습니다만, 교활할 정도로 똑똑한 최정화의 영업전략은 재미있고 공감이 되었어요. 최정화는 소위 세상의 기준에 자기를 맞추는 게 아니라 자기가 먼저 자신을 규정하면서 선도적으로 치고 나가는 스타일인 거죠.
작가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작업만 보여주고 작가는 존재하지 않는 익명적인 작가도 있고, 작가의 인격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면서 작품과 작가의 인격을 구분할 수 없는 앤디 워홀, 백남준 같은 작가가 있죠. 어디서 어디까지가 작품인지, 작품이 아닌지 구분이 불가능해요. 그리고 역으로 지극히 보수적이고 제도적으로 분류된 방식에 자신을 맞추는 사람도 소극적이지만 나름대로는 영업전략을 취하고 있는 거라고 볼 수 있죠. 그게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하고 있겠죠. 다들 계산을 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것도 취할 수 있는 태도이고 그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죠. 다만 재미가 없죠. 제가 말씀 드리고 싶은 건, 이왕이면 영업전략을 적극적으로 구사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보면 오세린 작가도 기존의 정형화된 분류에는 안 맞는 거죠. 앞으로 제도적인 분류에 나를 맞춰야겠다고 생각하든지, 어차피 아니니까 전혀 다른 나의 네이밍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든지, 그건 자신이 선택할 문제에요. 중요한 건, 그것도 하나의 영업전략이라는 것.
오: 학교에서 선생님들의 말을 듣지 않는 거죠. (웃음)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동양화과 금속공예과에 있다 보니 더 그렇게 작업을 진행했나 봐요. 몇 명 분들이 제게 동양화과 나와서 득 본 게 있냐고 물어보세요. 아무리 봐도 없는데. 드로잉 정도 할 때 도움이 됐다고 해야 하나. 사람들은 대답을 원하나 봐요. 자기가 생각하는 틀 안에서 이 작가를 어떻게 규정하고 특정 지을 수 있을까 생각하는 거죠. 그렇다 보니 사람들이 원하는 금속공예나 순수미술의 장르 안에서 자신들이 찾을 수 있는 요소들을 전시장 안에서 찾으려고 하고, 작가에게도 그런 대답을 얻고 싶고, 작가도 내가 좀 맞춰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워낙에 금속공예라는 장르가 애매하잖아요. 유럽에서는 아트 주얼리라는 장르 안에서 금속공예를 다루기도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금속공예 안에 장신구가 속해있고. 이걸 벗어난 소재의 장르는 어떻게 분류되어야 하는 건지, 교육을 그렇게 받다 보니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그게 족쇄로 있는 것 같아요.
최: 그렇죠. 대중들은 그런 분류의 대상을 자기가 가지고 있는 기준에서 나누죠. 그래서 유리한 영업전략을 따르라는 거죠. 지금의 오세린 작가는 제도적인 분류에 완전히 따르지도 않으면서 다소 어정쩡한 상태인 것 같아요. 어차피 그쪽을 탈 게 아니라면 과감하게, 좀 야하게 나갈 필요가 있는 거죠. 그쪽을 따르는 게 영업전략상 좋겠다 싶으면 따르는 거지만, 내가 갈 길이 아니라면 세게 나가는 게 차라리 나은 거죠. 최정화처럼요. 그런데 단순한 영업전략이 아니고 자신의 미학적 태도와 결합이 돼야겠죠.
장르의 경계를 넘는다는 말 자체가 너무나 상투적이고 진부한 말이 되었죠. 쉽게 많이 하는, 닳고 닳은 매력이 없는 말이 되어버렸죠. 그런데 사실 ‘경계를 넘어서’라는 말은 쉽게 해서는 안 되는 말이거든요. 책임이 있어야 해요. 오세린 작가의 작업이야말로 경계를 넘어선 작업이라고 볼 수 있어요. 파인아트와 공예를 전공한 사람이 많지는 않겠지만 그게 꼭 오세린 작가만 그런 경우는 아니잖아요. 두 가지 전공을 한 작가들이 반드시 경계를 넘어서는 작업을 하진 않지요.
작가로서의 생존전략이란 결국 자신의 미학적 관점을 관철시키면서 먹고 사는 것이 가능한 상태를 위한 것 아니겠어요? 상품을 광고할 때 제일 핵심은 이 상품의 특징과 장점이 뭔지를 어필하는 것이잖아요. 작가도 마찬가지예요. 자기의 전략적인 포인트가 무엇인가, 내가 남들과 무엇이 다른지 정확하게 알아야 하고 그걸 어필하고 호소하는 게 작가의 능력이고 전략이겠죠. 오세린 작가는 경계를 넘나들고 의도적으로 범주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식의 게임이 자기 전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아티스트는 여러 종류가 있죠. 우직한 장인으로서의 예술가, 혹은 진지하고 심각한 주제를 다루는 구도자적이거나 혁명가적인 예술가도 있고요. 제가 오세린 작가에게 재미있고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게임 플레이어적인 측면이에요. 경계를 넘나들고 트릭을 사용하면서요. 재미와 의미 두 마리 토끼를 쫓으면서 ‘내 의도가 뭔지 맞춰봐’라고 관객들과 게임을 하는 아티스트. 저는 그런 아티스트를 굉장히 좋아하는데요, 재미있잖아요. 마르셀 뒤샹이나 앤디 워홀, 백남준이 그런 아티스트죠. 이 사람이 장난을 하는 건가, 예술을 하는 건가 알쏭달쏭 한데, 두 가지가 다 있죠. 가벼운 거 같으면서도 의미가 있죠. 의미도 있지만 무겁지 않고요. 저는 이런 작가들이야말로 진짜 현대적인 작가라고 생각해요.
요즘 예술가라고 해서 모두 현대적인 건 아니에요.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직하게 장인적인 작업을 하는 고대적인 예술가도 있어요. 혁명가적인 사명감에 넘치는 작가도 있고요. 어느 시대에나 여러 가지가 공존하니까요. 영악한 현대인들은 예술이 됐든 사랑이 됐든 선과 악의 양면이 다 있으며, 누구도 완전히 착하거나 완전히 나쁠 수 없다는 걸 알죠. 양면적인 가치, 다르게 말하면 다원주의적인 가치를 알아요. ‘00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식의 혁명가적인 예술가를 존경하지만, 친구로 사귀고 싶어 하진 않죠. 천 번의 필획을 그었지만 ‘그게 무슨 의미인데요’라고 물으면 ‘무슨 의미긴, 나의 피와 땀이야’ 말고는 할 얘기가 없는 예술가도 있죠. 고생한 건 알겠지만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는 그런 작가들도 있죠. 공감은 안 가지만 하지 말라고 할 순 없잖아요. 고전적인 장인형 예술가와 혁명적인 예술가를 양극단으로 했을 때, 그런 예술가들도 있기 마련이고 있어야겠지만, 그들은 닳고 닳은 현대인의 취향에는 잘 안 맞는 거죠. 사실 현대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건 적당히 악하고 적당히 착한 거예요. 너에게도 있고 나에게도 있는 걸 좋아하지 않나요? 저는 현대적 감각이라는 걸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완전 바보 같은 예술가나 정말 착한 예술가보다는 적당히 착하고 적당히 사악한 면을 다 가지고 있는 예술가에게 오히려 공감이 많이 가고, ‘이 사람 예술을 가지고 놀 줄 아는구나’라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이런 작가를 게이머 내지는 플레이어형 예술가라고 부를 수 있겠는데, 오세린 작가가 그런 유형의 작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얘기를 너무 많이 했네요. (웃음)
Vietnam Project made in Korea 05, 925silver, 2018
Vietnam Project made in Vietnam 04 (120 editions), zinc, artificial diamond, 0.8×2.2×2.5cm, 2018
오: 갤러리 1층에 앉아있으면 감시카메라를 사람들의 동선을 지켜볼 수 있어요. 그게 그렇게 재미있는 거예요. 일층에 사람들이 들어오면 일단 빨려 들어가듯이 거울 쪽으로 가요. 많은 여성들이 호들갑스러운 반응을 보이죠. “와, 화이트큐브의 갤러리에서 이게 구천팔백 원 밖에 안 해?”. 그게 그렇게 재미있어요. 오, 낚였구나! 작가가 아닌 이상 금색, 은색 표면의 재료가 뭔지는 궁금해하지 않아요. 알레르기가 있는지, 재료는 뭔지, 어떤 맥락인지 묻지 않아요. 상품으로 작업을 보는 사람들은 더 반짝거리고 큐빅이 많이 박혀있는 한국형 액세서리 스타일의 작업을 고르는데 집중해요. 그런데 저는 그게 불쾌한 게 아니라, 제가 만들어놓은 동선 중에서 저 사람은 어떻게 행동할지 맞출 때 재미있더라고요.
그리고 사람들이 여기에서 셀카를 많이 찍어요. 쇼핑몰 모델들이 촬영을 하고선 인스타그램에 올리더라고요. 전시를 처음 구상할 때, 오늘 같은 아티스트 토크의 장면도 상상했지만, 그보다는 고혹적인 분위기의 금색 프레임과 앤티크 진열장 앞에서 사진을 찍는 20대 여자들의 과시적인 풍경도 상상했던 것 같아요.
최: 재미있네요. 잘 맞아떨어졌던 것 같아요.
오: 네, 셀카 찍기 좋게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도 다 막았어요. 그리고 도슨트 자리에 앉아있으면서 작가인 척하지 않아요. ‘작가님은 이번 전시에서..’라고 말하면서 친절하게 안내하는 역할을 하죠. 좋아하시더라고요. 갤러리에서 주는 호의니까요. 게다가 반지에 에디션까지 새겨져 있네. 행복하죠. 전체 맥락을 알고 있는 사람들만이 공유하고 사유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지나가던 20대 아가씨도 예쁜 반지 하나에 행복해하는 걸 보면 저도 마음속이 따뜻해지는 것 같아요. (웃음) 물론 그분은 그 안에 써진 작업 내용은 읽어보지 않을 가능성이 크지만요.
최: 그 사람들은 그걸 예술이라 생각하겠지만 알고 보면 사실 예술이 아닌데, 그런데 또 이게 예술인 거지.(웃음) 대중이 가지고 있는 예술이라는 통념을 작가가 이용하면서 뒤통수를 치는 것, 그게 바로 현대예술이죠.
오: 작가의 자리에서 즐기는 게임에 대한 얘기를 더 해본다면 이 뒤에 있는 협약서는 저의 작품을 종종 구매해주시는 컬렉터와 관련된 거예요. 그리고 위에 있는 협약서는 베트남 공장 사장님과 주고받은 협약서고요. 강영민 작가가 이걸 보더니 저보고 남다른 쾌감을 즐길 거라는 하시더라고요. 소위 상류층이라 불리는 컬렉터에게 다이아몬드를 받으러 가고 한쪽에서는 전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액세서리를 만드는 사람들과 친구가 된다는 거죠. 베트남에서 20만 원의 월급을 받는 공장 직원들이거든요. 저는 이런 만남에서는 저를 관조하듯이 내버려 둬요. 양 극단에서 작가의 역할을 하는 거죠. 그 역할을 즐기고 있는 거 같아요. 판을 하나 차려놓고 하나씩 요소를 모아가는 방식이 아닌가 싶어요.
최: 그런 아슬아슬한 지점이 있는 게 오세린 작가의 작업방식 인 것 같아요. 뭐든지 어떤 맥락이나 지향 속에서 의미를 갖죠. 자신의 착함을 실현하면서 부르주아적인 행동을 같이 하는 거죠. 이런 예술판, 이런 것들은 다 부르주아적인 짓들이죠.(웃음) 우리가 하는 이런 행위는 우리에게 모종의 죄의식을 갖게 하죠. 지금도 시리아에선 어린애들이 가스 맞고 죽어가는데, 세상이라고 하는 건 비참하고 불합리한 것들로 가득 차 있는데 말이에요. 이런 세상에서 내가 안전하고 우아하게 예술적인 아우라를 취한다는 걸 생각하면 기분이 묘해질 때가 많죠. 좀 더 가난하고 거칠게, 저 낮은 곳을 향하여 살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세계의 고통들을 볼 때마다요. 그런데 예술이라는 행위를 통해 이런 감정이 면책이 되는 거죠. 뭐든지 예술을 통해서 표현하면 죄의식을 덜게 되죠. 한편으론 예술을 통해 표현한 것들이 위선이 아닌지, 정말 진실한지에 대한 물음을 던지게 되죠. 저는 제주 4.3 사건이나 세월호 참사 같은 비극을 주제로 다룬 작품을 볼 때마다 과연 비극을 저렇게 재현해도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이상하게 불편함을 느껴요. ‘악!’ 하고 비명을 지르는 거 외에는 표현이 불가능할 것 같은데… 좀 엉뚱한 얘기를 했지만, 고통을 소재로 예술을 할 때 그건 예술이라는 거예요. 고통 자체가 아닌 거죠.
오세린 작가는 한편으로는 싸구려 액세서리가 넘치는데, 또 다른 한편에는 값비싼 명품이 있는 세상이란 도대체 어떤 세상일까 하는 문제의식을 가진 거잖아요. 어떤 사람들은 천 원짜리 브로치를 사는데, 어떤 사람들은 도대체 뭐길래 하나에 몇 천만 원 하는 물건을 사는 것일까. 이러한 사회적인 문제의식이죠. 중요한 사실은, 오세린 작가는 이런 문제의식을 고상한 예술의 형태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게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우리는 여기서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를 느낀다는 거죠. 죄의식에 기반한 쾌감이죠. 죄의식을 느낄 때 오는 이율배반적이고 자기모순적인 쾌감이요. 그럴 수밖에 없죠. 다만 이걸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술가 중에는 이걸 알고,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이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이 이야기를 다루는 사람들이 있는 거죠. 부조리한 세상과 완전히 타협하지는 않는 거예요. 이런 것은 고통에 동참하고 증명하기 위한 예술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다만 문제를 쉽게 다루는 것을 경계할 필요는 있죠. 예술가 하기 되게 힘들죠.(웃음) 과연 오세린 작가의 이런 작업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오: 큰 변화는 불가능합니다. 저는 문제의식을 한두 명씩 생각하는 순간부터가 중요한 거 같아요. 제가 이번에 베트남에서 작업을 진행할 때, 그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그들에겐 너무나 최선의 선택이라 그들에게 ‘예술이 뭐니?’라는 질문을 하는 게 오만한 태도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 작업을 그만둬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 이 사람들과 자본주의 시스템이나 제가 느낀 문제의식을 화두로 삼는 건 어려울지라도 적어도 여기에 모인 사람들과는 나눌 수 있잖아요. 우린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있으니까요.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노력을 하면서, 큰 이상향은 한 숟가락씩 갖다 부으면 되겠다 싶더라고요. 아마 다들 그렇게 살고 있지 않을까요.
최: 제가 아까 얘기한 것과 연결되는데, 어떻게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게 굉장히 사악한 것일 수도 있어요. 지금 오세린 작가의 작업과 전시를 가지고 얘기하고 있잖아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량생산된 싸구려 모조품들과 명품의 아찔한 계급적 차이, 제3세계에서 액세서리를 대량생산하는 사람들과 명품을 소비하는 소비자들, 이런 게 공존하며 만다라 같은 모습을 만들죠. 그런데 그걸 소재로 하는 오세린 작가와 저 같은 사람, 우리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요. 모순을 이용해서 먹고 살고 있는 거죠.(웃음) 저도 우아하게 코멘트를 하고 있잖아요. 저도 거기에서 뭔가를 읽어내고 있고요. 윌리엄 모리스, 앤디 워홀도 얘기하면서 ‘당신 작업은 말이야 이런 맥락을 가지고 있고..’ (웃음) 우리는 굉장히 우아한 행위를 하는 거죠. 저도 이런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요. 하지만 이런 영역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우리의 이런 짓은 세상을 변화시키는데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 우아한 짓이니까 나쁜 짓이라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에요. 세계의 비참과 그 사이의 담론과 현실의 갭 사이에서 우리는 플레이하고 있는 건데, 인간의 삶이 이렇다는 거죠. 삶과 세계에 대해 엄청나게 혁명적이거나 대단한 것처럼 군다면 그게 오히려 꼴값일 수 있어요. 그런데 최소한 그렇게 하지 않는 선이라면 이해될 수 있고 용서될 수 있는 것이라는 거죠.
제가 생각하는 좋은 현대예술은 선과 악의 적절한 배합에 있어요. 만약에 어떤 예술이 백 프로 선을 주장한다면 그건 거짓일 거예요. 현대예술은 백 프로 선이 없다는 걸 아는 것에서 출발하거든요. 약간 착하고 약간 나쁠 수는 있지만 백 프로 착한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우리 현대인들은 알죠. 그래서 저는 민중해방의 그날까지 앞서 싸우자는 민중미술은 현대예술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고대나 중세 미술, 종교미술을 보면 백 프로 진실을 담고 있는 예술이 많죠. 종교미술은 특히 더 그렇고요. 일단 텍스트 내용에 담겨있는 게 백 프로 진실을 주장하잖아요. 그리고 어떤 예술이 백 프로 악일 수도 없죠. 나치의 선전미술도 백 프로 악은 아니에요. 백남준이 예술은 사기라고 했지만, 예술은 선과 악 둘 다를 담고 있기 때문에 예술인 거예요. 오세린 작가의 작업엔 선과 악, 거짓과 진실이 다 들어 있어요. 문제의식이 진실이긴 하지만, 담론화된 진실이기 때문에 실제 현실을 바꾸지 못한다는 의미에선 거짓이죠. 이런 구조를 아무리 고발하더라도 현실세계는 바뀌지 않죠. 예술이라는 건 표현된 것일 뿐, 이 자체가 현실이라고 착각하면 안 되죠. 오세린 작가가 다루는 것 자체와 작업에서 재현된 건 같은 게 아니니까요. 진실과 거짓이 같이 있고, 한쪽으로 기울지 않은 상태로 적당히 배합되어 있는, 사이비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그런 게 현대예술이라고 생각해요.
바로 이 아리송한 지점이 현대예술의 매력이라고 봐요. 명품이라 불리는 물건들, 백 프로 진짜인물건들은 좋은 공예품일 수는 있지만 현대미술이 될 수는 없죠. 그럴 필요도 없겠지만요.
B: 전시를 처음 봤을 때 매체가 귀금속인 이유가 일단 궁금했어요. 주제를 표현하는 것과 귀금속을 쓰는 게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초반에 이 얘기를 했잖아요. 명품은 몇 천만 원씩 하는데, 베트남에서 만들어지는 건 싸구려라고요. 전 이게 이유가 되지는 않다고 생각을 해요. 귀금속을 포함한 장신구라는 매체가 전체 이야기를 하기 위해 쓰인 이유?
오: 왜 이 매체에 꽂혔냐는 거죠? 제가 학부 때 함경아 선생님께 수업을 들었어요. 선생님이 저희에게 내준 첫 번째 과제가 ‘너희가 좋아하는 것들을 50개씩 나열을 해보고, 이유를 찾아오라’는 거였어요. 어떤 사물을 어떤 감각 때문에 좋아한다면, 그 감각은 내가 왜 끌리는지까지 찾고 찾아내는 과제였어요. 그 과제처럼 제가 이 매체에 왜 꽂혔는지 생각을 해본다면, 저한테 반짝이는 사물이란 과시를 통해 제가 느끼는 저의 평범함과 자격지심을 극복할 수 있는 일종의 아이템이더라고요. 저 역시 남들처럼 과시적이고 싶어 했어요. 나 자신을 꾸미는 데 적극적일 수 있죠. 반짝이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면요. 이게 제 내면에서 꺼낸 ‘왜’에 대한 답인 것 같아요. 그리고 일상에서 생각해보면, 장신구야말로 실용적인 쓸모가 없어요. 상징만 가지고 있잖아요. 내가 가지고 있는 다이아몬드가 의식주를 해결해주는 게 아니죠. 그런 점에서 액세서리나 주얼리, 장신구라고 불리는 패션 아이템이 저한테는 사람들의 욕망이 담겨있는 상징으로 보이더라고요. 반지 하나를 두고 생각해보면 부피가 정말 작은 사물인데도 불구하고 백 원짜리부터 몇 만 원, 몇 천만 원까지 금액 차이가 크잖아요. 삶을 둘러싼 아이템 중에 이런 장르가 없는 거예요.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유행의 변화가 크지도 않고요. 물론 그 상징이 굉장히 강력하기 때문에 오늘날 많은 브랜드나 작가들이 이걸 가지고 작업을 하죠. 20대의 제게 장신구는 나를 돋보이기 위한 욕망을 위한 사물로 훨씬 강하게 다가오더라고요. 그래서 제 이야기를 할 때 대표성을 지닌 사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저는 그런 현상을 가지고 작업하는 것 같아요.
B: 작업의 근간이 구조, 백 원짜리부터 몇 천만 원짜리가 존재하는 구조가 아이러니하잖아요. 왜 그런 구조를 갖게 되는지 조사를 해본 적이 있어요?
오: 욕망 때문인 것 같아요.
B: 굳이 질문을 하자면, 어떤 영역에서도 그런 차이는 존재하잖아요. 그중에서 선택한 이 장르의 어떤 부분을 작가가 알게 되어서 그 점의 부당함을 말할 수 있는 건지 싶어서요.
오: 부당하다기보단 우리의 이런 시스템, 이런 사회를 대표하는 아이템인 거죠.
B: 대표할 수 있는 이유가 큰 가격차이가 부당하기 때문 아닌가요?
오: 저는 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B: 아, 초반에 그렇게 얘기해서요.
오: 그건 최범 선생님께서 제가 자꾸 사회를 심각하게 본다고 강조하셔서.. (웃음) 부당하기보다는 이상한 거죠. 저는 남 사장이 <새들은 날기 위해 머리를 없앤다>에서 말하는 게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오늘날 먹고살려면 남 사장처럼 살아야 돼요. 그게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주변 사람 다 그렇게 살아요.
B: 그게 잘못됐다는 말이 아니라, 싸구려도 장신구고, 초고가도 장신구인데 그 두 차이가 너무 크다는 얘기를 저변에 깔고 있다고 이해를 했거든요. 그 사실이 불합리하다는 건지, 혹은 관객에게 그런 사실을 전달하려는 건지 궁금했어요.
오: 장신구가 지닌 특징 때문에 작업의 주된 매체로 쓰기에 너무 적합했다고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 삶을 둘러싼 사물 중에 우리의 욕망이 강하게 응축되어 있다고 느끼는 아이템이니까요. (+저는 이걸 통해 사회가 돌아가는 방식이 뭔가 이상한데, 그 구조를 같이 의심해보자는 마음이 크죠.)
B: 그 응축된 제품을 만드는 방식에 있어서 가장 싼 것과 가장 비싼 것의 갭이 어떤 관계를 맺는 거죠? 영상을 보면 사람들이 저렴하고 바쁘게 대량생산을 만드는데, 반대쪽에는 그와 배치되는 영역이 있잖아요. 이런 관계를 장신구라는 매체에 가져와서 표현하는 게 어떤 관계인지 궁금해요. 이 전시에서는 베트남 공장과 백화점을 비교했을 때 갭이 크다고 하는데, 그게 지금 전시 중인 장신구랑 무슨 관계가 있는 건지…
오: 저는 그 구조에 제 작업을 던져놓은 거예요. 이 끝과 저 끝을 따와서 전시를 하기보다는 수레바퀴처럼 돌아가는 전체 구조, 세상에 제 생각, 즉 제 작업을 던진 거죠. 그럼 작업이 그 구조 안에 빨려 들어갔을 때, 때론 1층에 전시된 공장의 작업들이 튀어나올 수도 있고, 그 과정에서 무상으로 대여받은 다이아몬드를 쓸 수 있는 경우도 생기는 거고요. 기존의 시스템을 가지고 온다기보다는 시스템은 원래의 방식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제가 들어갔다 나오는 거죠.
B: 그런 시스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궁금했어요. 백 원짜리에 해당하는 남 사장의 이야기와 반대로 천만 원짜리에 해당하는 구조는 어떻게 보시는지.
오: 어쩔 수 없는 거 같아요. 자본주의와 대량생산된 공산품 아래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이상. 중국에 남 사장이 일하는 생산공장이 있잖아요. 그 사람 혼자 전적으로 짝퉁을 만드는 게 아니에요. 생산을 하는 업체가 따로 있고, 그걸 주문하고 판매하는 곳이 따로 있어요. 그리고 그 위에는 유통과 판매를 쥐고 있는 구체적인 브랜드가 있는 거죠. 이 상위 업체들이 생산 업체에게 주문을 넣고 시키는 거예요. 언제까지 얼마큼 만들어 와. 위에서 내려오는 구조인 거죠. 아래에서 샘플을 먼저 만들어서 보여주고 올라가는 경우는 드물다고 하더라고요. 예를 들어 월마트나 포에버 21 같은 브랜드에는 잘게 쪼개진 시즌과 유행이 있고, 입고할 리스트가 있겠죠. 그중에 반지가 있다면, 거기에 있는 바이어나 디자이너들이 우선 대중의 취향을 상세하게 분석을 해요. 그 사람들이 뭘 살지. 그렇게 뽑아낸 디자인을 생산 업체에 넘기는 거죠. 한 회사에만 넘기는 것도 아니에요. 결국 생산 공장도 이 구조 안에서는 을인 거죠. 그 데드라인을 맞추지 못하면 패널티 물고 심해지면 도산하거든요. 저는 이런 구조를 자세히 관찰하다 보니 그 시스템 안에 있는 남 사장을 향해 비난을 하는 등의 가치판단을 하기가 어려워지더라고요. 이게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 제 엄마 아빠가 살아온 방식인 거죠. 저 또한 완전 반대의 삶을 살고 있는 것도 아니에요. 제가 제동을 걸 수도 없고요. 저도 자세히 제 소비를 들여다보면, 무의식적으로 소비한 것들 중에 대부분이 그런 소비 구조 안에서 생산된 짝퉁이에요. 길거리 물건, 저가 브랜드 물건, 그런 게 저를 둘러싸고 있는 거죠. ‘이거 안돼, 우리 행복한 세상으로 가요.’ 이건 불가능하거든요. 이 구조를 뜯어보면 결국엔 우리 같은 소비자가 선택한 게 남 사장이 이렇게 움직이게 만들어요. 굉장히 견고하게 얽혀있고, 제가 발견한 게 특별하다 생각하지 않아요. 그저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죠. 그리고 그걸 대변하듯, 방어하듯 합리화하는 남 사장이 있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작업을 한다면 어떤 태도로 어떤 결과물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하는 것 같아요.
생산자랑 소비자의 방식이 구분이 모호한 것처럼, 그리고 제가 짝퉁을 소비하는 사람인 동시에 아티스트인 것처럼, 이 사람의 구조도 환경이나 자리가 개개인을 만드는 거죠. ‘나는 오리지널리티만 추구하는 치밀한 장인이 될 거야‘ 도 아닐 것 같고, 여러 가지 요소들이 만났을 때 어떤 쪽에서는 과시와 동조, 모방 욕구가 투영된 브랜드의 제품을 만드는 거고, 똑같이 이곳에서는 과시와 동조, 모방 욕구가 투영된 저가 액세서리를 만드는 거죠. 그걸 움직이게 하는 궁극적인 이유, 동력은 같은 것 같아요. 자본주의, 대량생산 아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가지게 되는 욕망과 동력은 비슷해요. 하지만 이것을 이루고 있는 틀은 각각의 계층이 있는 거죠. 치밀하고 다양한 레이어 안에서요. 계급의 레이어. 소비의 레이어
최: 차이와 간극이 있는 피라미드 구조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거 아니었나요? 처음에는.
오: 어릴 때에는 제가 그런 구조를 극복해야 하고 예술가는 사명감을 가지고 바꿔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작업을 했었어요. 회의감과 자격지심이 밑바탕이 돼서요. 그런데 그랬던 생각이 세상을 함부로 재단할 수 없다고 바뀐 거죠. 피라미드가 각 층위가 비슷한 동력으로 돌아간다는 말처럼, 부당하지만 이것이 우리 사회인 거죠. 모두 열심히 사는 데 이런 거잖아요. 여기에서 어떻게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행동하느냐의 차이에서 드러나는 것 같아요.
최: 그게 중대한 현실이죠. 다만 현실 중에 어떤 건 처량하게 느껴지고, 일부는 밥맛 없는 거죠.
오: 동력이 같으니까 부자의 소비에 대해 손가락질할 수가 없고, 남 사장이 짝퉁을 만드는 것도 쉽게 비난을 할 수 없는 거예요. 남 사장은 오히려 하는 말이, “아주 먼 과거에 제사장이나 귀족만 사용할 수 있는 게 금붙이였다. 신과 개인을 연결하는 상징으로 금붙이를 소비했다. 그럼 그 이하 계급도 신이랑 소통하고 싶은데, 당연히 그것과 비슷한 것들을 만들지 않았겠냐”라는 거죠. 그러면서 본인도 부자가 아닌 사람들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거고 자부심을 느낀다는 거예요.
B: 쉽게 얘기해서 부와 빈의 차이에서 나오는 사회갈등을 미술로 표현하고 싶다고 했을 때, 장신구라는 소재는 굉장히 민감한데 오세린 작가는 그걸 다루잖아요. 그게 전 되게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거기에 대한 이야기를 추가로 더 듣고 싶었고요. 들어보면 사실 장신구는 먹고사는 데 없어도 되잖아요. 그 얘기는 일단 기본 이상의 조건을 갖추어야 가질 수 있는 거라고 했을 때, 현대적인 상황을 해학적으로 나타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 제가 들은 이야기 중에, 미국의 가난한 흑인들이 월급을 모아서 순금으로 된 장신구를 산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거 보면 남 사장 말대로 가난하다고 해서 일상에 필요 없는 상징들이 순위에서 뒤로 밀리는 것만은 아니죠. 오히려 더욱 과시하기 위해 사는 거죠. 내가 살 형편이 안돼서 안 사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흉내 내고 싶은 욕망들이 모여서 이 산업을 돌아가게 하는 거 같아요.
B: 그런 내용의 현대사회에서 상징하는 게 장신구라고 볼 수 있는 거 같아요. 표면적으로 차이가 묘하게 나는 것들로 자기의 소속감을 나타낼 수 있는 거죠. 저는 비슷한 영역을 하면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주변에서 장신구라는 개념으로 다가갔을 때 되게 부담스러워하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오: 재미있더라고요. 여기 소품 중에 진열장 안에 들어가 있는 전시대를 빌려준 매장이 있어요. 플래티넘(백금) 주얼리를 파는 곳인데, 그 매장 대표님이 하나에 2억 5천만 원 하는 팔찌를 보여줘요. 나도 장신구 만드는 사람인데 이 앞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싶죠. 어떤 부자가 불가리 컬렉션에서 사고선 두 번 차고 질려서 팔아달라고 여기 맡겼다는 거예요. 한편에선 베트남에서 만든 장신구들을 구천팔백 원에 팔고 있잖아요. 그럼 사람들이 이걸 구천팔백 원에 팔아서 남는 게 있냐고 물어봐요. 그런데 저 샘플들 몇 백 개 만들어올 때 제가 공장에 낸 재료비가 따로 없어요. 재료비를 내기에 너무 적은 금액이라 밥 한 번 사는 걸로 퉁 쳤거든요. 인건비를 포함해도요. 이렇게까지 차이가 나는 장르가 우리 소비재 중에 있을까 싶어요. 할 말이 많은 소재겠다 싶어요.
B: 그 차이가 이 분야의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하고 재미있는 거 같아요. 여담이긴 한데, 백금 작업 같은 건 설비가 굉장히 비싸거든요. 불대만 해도 4억 정도 하는. 그런 반면에 베트남 공장은 영상에서 봤던 대로 열악하고요.
오: 베트남에선 만드는 사람부터 자기가 만드는 것에 대한 장기적인 사용 같은 건 생각하지도 않죠. 오래 쓰는 용도가 아니니까요. 진열되는 그때에만 알이 잘 박혀 있으면 돼요. 그걸 사는 순간 알이 떨어지는 건 책임지지 않죠. 어떤 반지들은 오래 끼면 손이 파래진다거나… (웃음)
2016년도에 중국 이우에 푸톈 시장 가서 인터뷰를 했었어요. 전 세계의 동대문시장 같은 곳인데, 다이소에 있는 물건의 70프로 이상이 이우에서 온다고 하더라고요. 전 세계에서 쓰이는 작은 물건들, 플라스틱들이 이우에서 생산되고 이우에서 유통되는 거죠. 도매가로 300원짜리 반지를 파는 상인한테 “이거 얼마나 가요?” 물어보면 웃어요. “어떻게… 그런 질문을 하냐.”고요. (웃음) 2-3개월 후면 색이 변한다고 하더라고요. 뭘 빨리 팔기 위해서 빨리 만들어 파는 게 목적이지, 간직하거나 의미를 갖는 목적이 아닌 거죠. 귀걸이도 철심이고. 아프리카나 남미로 가는 물건들은 더 저렴하고요. 귀걸이가 도매가로 12개에 300원밖에 안 해요. 그렇게 팔아도 남는 장사래요. 그런데 이 가격에 팔지 않으면, 아까 남 사장님 말대로 ‘그럼 남미 사람들은 뭘 착용해?’의 질문이 나오게 되는 거죠. 그 사람들도 자기를 꾸미고 싶은데, 뭘 해야 하잖아요. 여기서 뭔가를 열심히 만들어왔던 우리들은 과연 어떤 발언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더라고요. 너무나 당연하게 액세서리는 다 가짜래요. “액세서리는 다 가짜야. 비슷한 재료로 흉내 내는 게 액세서리인 거지.”.
푸톈 시장에서 만난 세 명의 사장님이 있었어요. 심 사장님, 남 사장님, 김 사장님. 남 사장님이 일본 3백 엔 숍에 납품하는 중저가 사장님이고, 심 사장님이 남대문에 납품하는 고가 사장님인데, 만 원을 넘기면 안 된대요. 그리고 초저가 김 사장님은 남미에 넘기는 액세서리를 만들죠. 이분들이 담당하는 시장의 부분은 너무나 큰 시장이에요. 중국, 일본, 남미, 아프리카의 수많은 사람들. 작가는? 1프로! (웃음) ‘그렇다고 내가 300원짜리 귀걸이를 만들건 아닌데, 이런 세상에서 나는 어떤 태도로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이게 계속하게 되는 질문인 거 같아요. 의심은 하지만 비난하기엔 망설여지는 거 같아요.
The birds trashed their heads to fly (shooting cut), 2016
오: 고가 브랜드들이 쇼피스 용 작품을 만들어서 시즌 별로 전 세계 순회 전시를 하며 컬렉션을 전시하고, 여기에서 자신들의 스타일을 선보이는 거죠. 이때야말로 정말 장인들이 만들겠죠. 샤넬에서도 매년 공방 컬렉션을 발표했었어요. 그 공방에는 공예가가 있겠죠. 기술과 미의 절정을 뽐내는 작업인 거죠.
B: 그런 컬렉션에서는 재료부터 정부에서 품질인증을 하죠. 가격만 봐선 거품이 엄청 생겼다고 얘기할 수도 있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브랜드를 사는 거니까요.
관객 D(이하 관객 ‘D’): 그런데 작품성이나 예술성은 이런 공간에서 전시되는 작가의 작품이 더 나을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최: 현대미술이죠, 이건.
D: 컬렉션에서의 작품들은 일단 실용적인 거니까요.
오: 정말 실용적인 건 공장에서 나오는 것들 같아요. <베트남 프로젝트 in 베트남> 시리즈는 제가 저렇게 만들려고 저 모양이 나온 게 아니라, 제가 아무리 디자인을 해서 줘도 거기에서 할 수 있는 공정의 한계가 있는 거예요. 원본을 만든 사람이 제 스케치를 100프로 재현을 해도, 기계 안에만 들어가면 모양이 바뀌더라고요. 왜냐하면 거기는 초당 한 개씩 나오는 퀄리티를 추구하는 곳이라, 아무리 섬세하게 원본이 나와도 그 속도로 작업을 하지 않으면 다른 작업을 못하는 거죠. 대량생산이라는 게 양이 많은 것 이전에, 빨리 만들어야 하는 게 우선이더라고요. 그 빠른 속도는 반복을 거듭한 끝에 어느 순간을 넘어가야 나온대요. 처음엔 느려도 사람이 기계처럼 동작을 반복하면 빨라지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복잡한 작업은 할 수가 없는 거죠. 인건비가 너무 중요하니까 단순하고 빨리 만들 수 있고, 불량률이 적은 작업이 좋죠. 그런 게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고요.
D: 이런 구체적인 얘기를 들으니까 되게 흥미로운 거 같아요. 저는 우리가 살고 현대사회에 물건들이 지나치게 대량생산되고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그게 결국 환경 문제랑 연결되잖아요. 직접 느끼고 오셨는데, 이런 부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오: 생산공장에서 불만이 많은 게 오더를 내리는 유통과 판매 업체에서 가격을 자꾸 낮춘다는 거예요. 생산공장 사장님들 말씀이 10개를 만들어서 넘겼을 때, 판매 업체는 그중 2개만 팔고 8개를 바다에 버려도 본전이래요. 그렇다고 해서 2개를 만들진 않잖아요. 우리한테는 ‘상품’이 필요하니까요. 이분들의 입장에서는 시키는 대로 만들지 않으면 도산이죠. 삶과 직결된 거니까 이 굴레 안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더라고요. 그렇다고 H&M이나 포에버 21에 2개의 물건만 진열되어 있으면 소비자인 우리도 가지 않을 테고요. 누구 하나가 패를 쥐고 있는 게 아니라 세상 사람들 전체가 관련된 이야기 같아요.
D: 저는 개인적인 취향일 수도 있는데, 저 자신도 공예를 하는 사람으로서 희소가치에 대한 특별함을 생각하거든요. 어떤 물건을 구입하러 갔는데 같은 제품이 색깔 별로 쫙 진열이 되어있으면 저는 사고 싶지 않더라고요. 가격이 적당하더라도 물건이 수십 개씩 있으면 흥미가 떨어져요.
오: 그래서 공예가이신 거 아닐까요? (웃음)
D: 지나친 생산이라고 느낀 적이 많거든요. 가격이 다섯 배, 열 배 이상 높아도 생산을 좀 덜 했으면 좋겠더라고요.
오: 대량생산이 아니면 공장이 돌아갈 수가 없으니까 구조적인 문제도 큰 것 같아요. 그리고 사람도 그렇잖아요. 회사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다 열심히 일하진 않잖아요. 핵심적인 것들만 만들어서는 전체가 굴러가지 않는 거 같아요. 잉여의 것이 항상 필요한 거죠.
최: 수요가 있으니까 만들어지는 거겠죠? 제가 먹는 라면이 수백 만개 중에 하나지만 똑같은 라면이 수백만 개 있다고 해서, 라면 먹는 데 아무 거부감은 없어요. 이건 필수품이니까요. 그런데 얘기하신 공예품의 경우, 개성이 중요한 가치이고 차별화된 거니까 수백 만개 중에 하나라는 건 의미가 없는 거죠. 결국 뒤집어 말하면 사회적인 문제인 것 같아요. 대량생산된 액세서리를 쓰는 사람에게는 이미 상징성의 차원에서는 필수품인 것이고, 이들에겐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취향 자체가 형성되어 있거나 욕구 자체가 없는 거죠. 계급에 따라서 취향이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대한 취향의 사회학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죠.
오: 일부 사람들은 남들이 사면 사기 싫어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들이 사니까 사죠. 겨울에 롱패딩 유행하는 거 보면 남들이 사니까 나도 사는 식이던데요. 그게 굉장히 다른 거 같아요. 그런데 남들이 안 사기 때문에 사는 방식으로 살면, 돈은 많이 못 버는 거 같아요. (웃음) 그래서 공장에 계시던 분들이 저랑 일하기 힘들다고 했나 봐요. 죄다 그려오는 게 안 팔릴 것 같은 것만 그린다고. 우리는 대중을 노려야 하는데, 이건 몇 명만 좋아할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이게 되게 큰 갈등이었어요. 나중엔 포기하고 그 간극을 즐기게 됐지만 처음엔 힘들었어요.
관객 E(이하 관객 ‘E’): 앞에 얘기했던 것 중에, 이렇게 만든 작품이 피라미드의 제일 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파는 게 목표이기도 했다고 했잖아요.
오: 초반에 그랬죠.
E: 실제로 반응은 어땠어요? 그런 사람들에게 잘 팔리는지.
오: 어떤 사람들이 샀는지 보면, 작가의 작품이나 디자이너의 독특한 아이템을 평소에 즐기는 분들이 사더라고요. 제 작업이 형태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똑같은 모양을 만들기가 힘들어요. 속이 텅 비어있고 복잡한 구조로 엉켜있어서 보통 장신구를 대량생산 하는 방식으로 몰드를 뜰 수가 없어요. 그래서인지 본인이 산 장신구가 하나뿐일 수밖에 없다는 걸 좋아하시더라고요. 1층에 전시된 것들도 상품으로 볼 때는 120개밖에 없는 거잖아요. 숫자도 새겨져 있고요. 반응이 재미있었어요. 작업의 맥락을 알고 사가는 사람들, 예쁘게 반짝이는 모양을 좋아하는 사람들. 베트남에서 만들어진 반지를 사가는 분들께는 본드로 붙어있는 알이 빠질 거라는 얘기도 덧붙이고요. 하나씩 하나씩 빠지다가 전부 다 빠질 거라고요. (웃음)
B: 그 자체를 예술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C: 장인에게 맡겼을 때 그 사람이 높은 퀄리티로 계속 만들어줄 수 있다면, 작가 본인이 직접 만들지 않고 맡길 생각도 있으세요? 작가가 왜 수작업으로 오리지널을 만들었는지에 대한 당위성이 궁금해요.
오: 첫 번째는 재미있어서 하는 거 같아요. 만지고, 만드는 순간들을 좋아해서요. 두 번째는 제가 만들 때 원하는 형태가 가장 쉽게 나오니까요. 사람들이 종종 3D로 그려서 캐스팅을 뜨는 게 낫지 않냐고 하는데, 저는 평면을 보면서 입체를 생각하는 게 상상이 안 가요.
B: 베트남 공장 직원의 손과 다른 점은 오세린 작가는 작업을 할 때 반복 활동을 한다고 해도 매
순간 선택을 자의적으로 하고, 그에 대한 에너지가 굉장히 필요하기 때문에 직접 할 수밖에 없을 거 같아요. 그리고 현실적으로 3D 작업으론 이런 구조가 나오기 힘들죠.
오: 처음에 길거리에서 저가 액세서리를 모으고, 그걸 실리콘이나 고무로 틀을 뜬 다음에, 그 틀에 왁스를 붓거든요. 여기에서부터 복제와 오리지널의 경계가 흔들리는 거예요. 길거리 액세서리의 복제품을 가지고 작업을 하면, 얘네들은 오리지널 작품의 결정적인 소재가 되는 거잖아요. 양면적인 특징을 다 갖는 거죠. 작가가 이 과정에 얼마나 개입을 하는지에 따라 이런 이야기가 좀 더 설득력 있게 가는 것 같아요. 만약에 이 첫 과정을 다른 사람이나 공장에 맡기면 다른 이야기가 덧붙여지는 것 같아요.
관객 F: 앞으로도 이렇게 메타 크래프트적인 작업을 계속할 예정인가요?
오: 인생은 계획대로 흐르지 않잖아요? 이러다가 금속공예에 획을 긋는 최고의 공예가가 될지도 몰라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