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린 : 숲 온도 벙커
최인선 / 독립기획자
- 2022년 바이파운드리에서 열린 개인전 <숲 온도 벙커>의 리뷰입니다. (작품보기)
- <월간미술> (2022년 9월호)에 수록, pp.154.
작가는 내러티브를 끌고 오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자신의 힘과 위태로움이 똑같이 자라는 바로 그 경계를 실험한다. 그동안 공예와 오브제, 영상과 텍스트 사이를 오가며 편중되지 않은 작업 방식과 다양한 채널을 이용한 능란한 해석으로 주목받은 오세린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논하며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섬세히 흩트려 놓는다. 존재와 상상의 경계, 원본과 복제의 경계, 그로테스크함과 화려함의 경계에서 작품이 인지되기까지 서로 다른 것들을 줄타기하며 에너지를 발산한다. 그리고 작품이 무대 위에 온전히 오르기 위해 더해졌던 크고 갑작스러운 이야기 폭발을 바라본다.
Exhibition view (Forest Temperature Bunker, BYFOUNDRY, 2022
photo by Kyung Roh
전시 <숲 온도 벙커>의 이야기는 193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작가 노트에 따르면 일본인 어류학자가 시베리아에서나 볼 수 있었던 열목어를 낙동강 상류에서 발견했고 이에 따라 계곡 일대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다. 그런데 열목어보다 먼저 발견된 것이 거대한 규모의 아연 광산이었다. 일본 기업 미쓰비시가 이미 광산 개발을 진행 중이었고 결국 열목어는 사라진다. 사람들은 열목어 복원회를 조직하여 한강 상류에서 열목어를 잡아 낙동강에 풀어 놓게 된다. 여러 해에 걸쳐 몇 천 마리를 풀어놓았고 돌아온 열목어에 대한 인터뷰와 다큐멘터리가 방영되는 등 당시 사람들은 낙동강에 열목어가 되살아났다고 믿었다. 그리고 지금, 작가는 낙동강에서 잡히는 열목어가 한강 열목어가 아닌 절멸한 줄 알았던 낙동강 열목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한강 열목어의 행방을 쫓다가 신비로운 토착화를 보게 된다. 작가는 이 지점에서 작품의 실마리를 잡는다. 시간의 진화를 거쳐 작가가 주목한 열목어와 아연 광산의 모양은 머물렀다가 사라지는 시간의 경계,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시대적 경계, 자연적 재료와 인공적 재료의 경계에서 드러나는 ‘틈새’로서 그 중간의 ‘어딘가’로 줄거리를 작동시킨다.
예술가들이 자연 현상의 위엄을 지각하고 전시의 언어로 변형시켜 표현하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다. 이는 무분별한 자연 파괴에 대해 예술가들이 깊이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러한 의식은 목가적인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반대로 경외감과 폭력에 대한 제한이라는 기본 원칙과 관계된 것이다. 이 원칙은 인간사회에서만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자연이 사회의 변방으로만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복잡한 리듬을 타는 작가의 교차적 관찰이 집약된 작품은, 자연의 근원적 힘이 모여드는 작은 파동도 거대한 파도도 될 수 있는 모험의 장소가 되었다. 작품 설치에서 작가의 한결같은 메시지를 읽을 수 있는데 빛과 그림자의 배합을 강조하고 완전한 빛도 완전한 그림자도 아닌 어둑어둑한 환상 속으로 침잠을 유도한 것이 그렇다. 그늘진, 흡사 빛이 사라져버릴듯한 틈새와 작품의 어딘가로 이어지는 대립 속에서 관객의 움직임, 전시장 문이 열리고 닫히는 순간이 수놓아져 이들의 관계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시각적 공간은 전시장이라는 물리적인 공간과는 다른 차원이 된다.
이번 전시로 또 한 번 자신의 고유한 세계를 만든 작가는 조각 기법과 특정 형태의 이미지를 통해, 특히 경계의 틈새를 관통하는 시간 구성을 통해 시각적 사유의 전통까지 연결한다. 이는 구체적인 대상의 명확성이 아닌 유희, 무형의 풍경, 꿈꾸는 세계를 요구한다.
예술작품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수없이 연결된 소통의 망을 통해 양식을 얻는다. 특히 보이고 만져지는 것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끌어내고자 하는, 예컨데 새로운 색채, 새로운 구조, 새로운 재료, 새로운 시간성을 얻고자 하는 작가들의 경우에는 종종 다른 예술이나 사유 체계에서 결정적인 자극을 얻곤 한다. 이처럼 공공연하게 타 분야와의 정신적 교류를 통해 탄생한 작품들은 모든 감각의 사유 속에 자신을 집중시킨다. 그래서 그 작품은 잠시나마 삶의 중심이 된다. 작품이 삶을 변화시킬 수는 없을지라도, 그것이 위기나 권력 같은 것들과는 다른 힘으로 우리를 이끌고 있다고 믿는다.